2009년 9월 23일 수요일

나비와 나무

연구실 창문 밖으로 붉은 꽃들이 아롱아롱 나무에 피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주위를 궁굼한 나비가 향기를 흩으리며 날아 지나친다.



동족간의 경쟁과 다툼에 휘말리지 않을 그들이 부럽다.

사실 그들은 경쟁과 다툼을 하는데 필요한 감각과 몸을 부여받지 않았다.

대자연을 일구지 못하는 그들은 굳이 살아나가려는 의지를 가지지 않은 듯 하다.

그저 생존이 가능한 환경이 갖춰지면 꽃은 피고, 아니면 흙으로 돌아간다.


길게 보면 사람도 마찬가지다. 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살고,

아니면, 약간 바둥대면서 더 살려고 노력하겠으나 결국엔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가지는 의지나 감정들이 나비와 나무들에 비해서 다를게 무엇일까.


옛말에 기특한 나무, 기특한 짐승이라고 그들을 기려주는 일이 있긴 했으나,

그건 사람의 관점 혹은 특정한 그룹의 관점에서 나온 발상이고,

그것을 진정값어치 있는 일이라고 여기기에는 우습지 않다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결국 사람이 하는 일들은 사람의 세계에서 끝난다.

그 세계를 벗어나면 어떤 사람의 행위에대해 어떤 비중있는 가치판단을

부여하기에 무리가 있다. 우리는 이 작은 세계 안에서 잘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내며 온갖 감정을 겪어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주는 만족은 순수히 내 안에서부터 생성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연 무엇이 순수한 것인지 사회로부터 오는것인지

그 구분이 쉽지않다. 이제 이런 종류의 만족 추구와 도덕률과는 어떻게 결합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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